top of page
Writer's pictureAsher Intrater

이스라엘의 가을 절기들




토라(모세의 율법)의 절기들은 두 가지 히브리어 이름으로 불립니다.

  • 하그- 잔치를 뜻하며 원을 그리며 모이거나 춤을 춘다는 어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 모에드- “정하신 때”를 뜻하며 운명 혹은 목표를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그는 축제의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모에드는 예언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된 두 무리의 절기들 토라의 절기에는 두 무리가 있습니다. 봄에 셋, 가을에 셋이 있습니다. 봄 절기는 예슈아의 초림과 관련이 있고, 가을 절기는 재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림 당시의 세 번의 위대한 구원 역사는 모두 봄 절기의 날짜에 이루어졌습니다.

  • 페쌐흐(유월절)- 십자가 사건

  • 오메르(초실절)- 부활

  • 샤부옽(칠칠절)- 오순절 또는 성령의 부으심

마지막 때의 예언에서 환난, 재림, 천년왕국이라는 세 가지 주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이 그들을 상징하는 절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 테루아(나팔절)- 대환난

  • 키푸르(속죄일)- 재림

  • 수콭(초막절)-천년왕국


나팔절에 대한 혼란 정리 나팔을 부는 것과 관련해서 약간의 혼란이 있어왔습니다. 이것은 욤테루아(레위기 23장)와 욤키푸르(레위기 25장)에 모두 명령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욤테루아에 나팔 부는 것은 여리고 전투(여호수아 6장), 이스라엘 진영의 동원(민수기 10장), 그리고 다양한 종교, 정부, 군사 집회 등에서 계속됩니다. 쇼파르를 테루아로 부는 것은 행동에 대한 촉구이자 예언적 경고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대부분의 나팔은 욤테루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나팔들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에서 그 성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나팔은 여리고에서 일곱째 나팔로 백성들이 달려가 성을 점령한 것처럼(여호수아 6:20), 이 세상의 나라들이 예슈아의 왕국에 의해 점령될 것을 선포합니다(요한계시록 11:15). 이것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무력으로 왕국을 점령할 준비를 하라는 부르심입니다(마태복음 11:12, 다니엘 7:18). 이것은 왕국의 승리로 이끄는 영적 전쟁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일곱째 나팔은 “마지막 큰 나팔”이 아닙니다. 마지막 나팔은 속죄일과 연결되어 있으며, 희년의 시작을 상징하기 위해 부는 나팔입니다. 이 특별한 나팔은 다음과 같은 곳에서 언급됩니다.

  • 출애굽기 19:13, 16, 19- 시내산에서

  • 레위기 25:9-속죄일

  • 이사야 27:13- 죽은 자의 부활, 휴거

  • 마태복음 24:31- 재림, 휴거

  • 고린도전서 15:52- 재림, 부활, 휴거

  • 데살로니가전서 4:16- 재림, 부활, 휴거

이 특별한 나팔은 하나님 당신의 나팔이며 역사상 단 두 번, 곧 시내산에서 한 번, 재림 때 한 번만 부는 것입니다. 이 나팔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강림하실 때 다시 한 번 불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9:11). 가브리엘이나 미가엘 같은 천사가 아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대한 오해), 하늘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공격 명령을 내리시는 예슈아께서 나팔을 불 것입니다(여호수아 5:13). 성경의 패턴에 따르면 그 때는 속죄일 나팔이 울릴 때 일어납니다. 성전 제사장들에게 가장 큰 날은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속죄일입니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묘사한 가장 큰 날은 심판의 날, 즉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요엘 2:1, 31)입니다. 마지막 때 가장 큰 날은 예슈아의 재림입니다. 제사장들의 “큰 날”, 선지자들의 큰 날, 그리고 메시아 왕의 큰 날은 모두 동일한 날을 가리킵니다. 성경의 패턴은 일관됩니다. 초막절의 예언적 의미 초막절은 랍비들에 의해 ‘큰 절기’라 불리며, 추수 수확의 절기로도 불립니다. 토라는 이 절기 동안 기뻐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며(신명기 16:15), 심지어 기뻐하는 것만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모든 절기와 마찬가지로 세 가진 차원의 해석이 있습니다. 1. 농경, 2. 이스라엘의 출애굽, 3. 새 언약 예언의 성취는 스가랴 14장 16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이사야 27:13과 비교).

  1. 예언- 이 절기는 미래에 기념할 절기이므로 예언적인 의미가 잇습니다. 그것은 중요합니다.

  2. 현재- 과거에 명하셨고 미래에 대해 예언하셨다면, 토라는 유효해야 하며 절기는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전히 유관한 것입니다.

  3. 국제적- 이것은 유대인만의 절기가 아니라 열방을 위한 절기이며,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이며 전 세계적인 축제입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4. 개혁-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이 날을 축하하려면 둘 사이에 역사적 화해가 있어야 합니다.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5. 축제- 전쟁과 환난 후에 해피엔딩이 있습니다. 기쁨, 평화, 그리고 승리의 때입니다. 긍정적인 것입니다.

  6. 천년왕국- 이는 재림 때 있을 큰 전쟁 후에 일어나기 때문에 천년왕국이 비유가 아니라 문자적인 것임을 증명합니다. 실제입니다.

  7. 예루살렘- 모든 나라가 예슈아의 천년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그분의 지상 보좌가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중심적인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영적, 정치적, 군사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가랴 14장 16절은 2절과 평행을 이룹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16절에서는 예배하러 오고 2절에서는 싸우러 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예루살렘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예슈아의 영은 그분의 백성을 예배로 이끌고, 또한 그분은 적들을 전투로 이끌 것입니다. (3절은 그분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올 것입니다. 선택은 그들이 이 성을 대항해 싸우러 올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왕을 경배하러 올 것 인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느냐는 것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