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강력하고 초자연적이며 매우 효과적인 사역의 형태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운영 중인 네 개의 기금이 있는데, 이 기금은 저희가 설립, 관리, 이사회 활동 등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 기금은 가난한 사람들과 복음 전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제공됩니다. 이런 식으로 헌금은 저희의 다른 모든 비용과 급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고린도전서 12장을 인용하며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하나 더 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니아 회중이 헌금에 있어서 탁월했던 방법에 대해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에 다음과 같은 권면을 썼는데, 이것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7절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이 구절에서 은혜라는 단어는 카리스마이며, 우리가 카리스마적 은사라고 할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방언, 예언, 치유, 축사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사인 것처럼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헌금하는 초자연적인 방법이 있는 것처럼, 자연적인 방법으로 헌금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떻게, 언제, 어디에 헌금해야 할지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에 시간을 쏟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 습관에 막대한 돈을 낭비하게 하는 초자연적 충동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악마적인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정욕이 혼내 욕구의 왜곡인 것처럼, 도박에 끌리는 것도 왜곡된 것입니다. 도박의 힘은 원래 하나님이 주신 능력, 곧 돈을 주고 그로 인해 배가된 결과를 낳게 하는 것에서 옵니다.
예슈아께서는 희생적인 사랑과 믿음으로 드리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0절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급진적인 헌금의 신성한 모험에 들어가본 사람은 도박에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급진적인 헌금은 더 많이 받은 다음, 훨씬 더 급진적으로 드리는 급진적인 믿음과 결합된 것입니다. 때로 저는 제가 헌금에 “중독”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드리고 더 드리고 싶은 욕망에 거의 사로잡혀 있습니다. 번영보다 관대함이 더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드린 것의 효과를 배가시켜 주시고, 미래에 더 많이 드릴 능력을 배가시켜 주시며, 우리 손에 돌려 받는 것을 증가 시켜 주셔서 그 과정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요! 정말 기쁜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인본주의적 조종은 헌금의 초자연적인 측면을 빼앗아 갑니다. 기도로 인도함을 받은 헌금은 자유를 주고 기쁨을 주며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예루살렘에 주의 집을 짓기 위해 드려진 헌금에 관한 타낰흐(구약)의 말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9장 9절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자원하여 드리면 기쁨이 있습니다. 헌금하는 것에 기쁨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함께 기뻐하십니다. 이 실제를 경험하면, 여러분은 큰 소리로 웃게 될 것입니다.
이 헌금은 다윗의 마지막 사역의 일부로, 여호와의 집의 사역을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주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제 사역에는 제가 이룰 수는 없지만, (영적, 자연적) 자녀들이 대신 이룰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드림의 기회를 그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사역으로 보았습니다. 골리앗을 이기고, 기름부음 받은 젊은 지도가 되고, 사울에게 핍박을 받고, 모든 나라를 통치하고, 밧세바를 범한 죄를 회개하고, 예배를 이끌고, 성경의 시편을 지은 후에 모든 것이 이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평생의 비전으로 주신 하늘의 “패턴”을 어린 제자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배턴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고 주고 또 주는 것입니다.
헌금은 궁극적인 사역입니다. 섬김과 순교는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영혼과 피를 드립니다. 히브리어에서 피라는 단어(담)는 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비를 문자 그대로 ‘학습혈’이라고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미국인 한 명이 해외 선교를 운영하는데 드는 일반적인 비용은 현지 복음전도자 혹은 목회자의 수를 100:1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사도적 사역은 토착적이고 지역적인 복음전도의 돌파를 요구합니다. 지역 신자들의 새로운 세대에게 헌금하는 것은 사도적 사역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현지 노동자들에게 자금을 주기 시작할 때 그 나라 운명의 정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정으로 축복하신 미국, 한국 그리고 기타 국가들은 이제 중국,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에 전례 없는 추수를 위한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K. P. 요하난이 저서를 통해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진정 “세계 선교의 혁명”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헌금을 드림으로써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로 복음전도의 능력을 확장시킵니다.
로마서 10장 14-15절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이 구절에는 날카롭고 부담이 큰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믿는 것뿐입니다. 믿기 위해서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누군가는 전도자를 보내야 합니다. 여기서 보낸다는 것은 대체로 최전선의 전도자들에게 재정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상 명령의 실제적인 면입니다. 결론은 복음이 전파되도록 헌금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는 전도자들보다 헌금하는 사람과 더 관련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성숙해질수록 이 도전을 가장 중요한 곳에서 실제로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합시다. 믿음 충만한 헌금의 초자연적 능력을 사용해서 복음은 전파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하나님 왕국을 이 땅에 이뤄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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